작성자 AGAC(admin) 시간 2024-04-26 13:3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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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의 도시스카프] 노인은 `이웃의 보물`, 함께하는 공간이 필요한 이유

 입력: 2024-04-24 18:58    김은아 라이프스케이프 크리에이터

 

한 해 전 96세 할머니와 같은 마당을 나눠 쓰며 1년 남짓 살았다. 이웃들은 동서남북 어디를 보아도 모두 아흔이 넘으신 어르신들이었다. 장이 서면 어르신들은 '사람 구경'을 하러 나가신다. 한 마을에서 수십 년을 같이 지내신 어르신들인데도 경로당보다는 밖에 나가 '사람 구경' 하는 것을 더 좋아하셨다. 지하철이나 터미널 같은 공공장소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약 20%는 65세 이상이다. 노인정, 노인회관, 경로당, 노인복지회관, 재가 노인복지센터, 재가 노인요양센터 등 다양한 '노인 전용' 돌봄시설이 있다. 그중 경로당이 약 98%로 약 7만여 개나 된다. 그런 경로당을 어르신들은 "노인들이나 가는 곳"이라며 '노인을 비하'하고, 65세 미만 비노인들은 "노인들만 있는 곳"이라며 아예 세상 밖의 일처럼 여긴다.

경로당이 처음 생긴 1960년대 후반에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 노인이 '노인'으로서 '노인들과만' 보내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평균수명도 지금보다 훨씬 짧았고, 가구당 서너 세대가 같이 살았으니 말이다.

'노인(老人)'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는 사회적 스티그마(stigma)이다. 2021년 기준 조부모와 함께 사는 18세 이하 인구가 0.8%다. 사회적 보장을 요구하게 되는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노인'이라는 이름으로 '노인 전용' 공간에서 '노인들과만' 보내야 하는 시간이 약 35년이나 되는 셈이다. 고립이다. 그러니 거죽은 ICT 첨단기술 등을 덧입고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데, 노인들은 도시의 이곳저곳 다른 공간을 찾아 나서는지도 모른다.

시설 무료 이용 등 경로우대는 좋을지 몰라도, '노인'이나 '경로우대'는 노땡큐인 것이다. 시설의 명칭, 즉 네이밍(naming)은 건축물의 정체성과 목적, 그리고 그 공간을 경험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한 시설은 노인이 사회의 불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사회의 중요한 자원이라는 인식을 주고자 '이웃의 보물'로 네이밍했다. 아이부터 중년층에 이르기까지 지역민들은 노인세대와 적극적인 교류를 하며 노인의 소중한 역할을 느끼게 되었다.

해외에서는 시니어나 노인이라는 단어 대신 활동 센터(Active Centre), 생활 센터(Lifestyle Centre) 등으로 이름을 바꾸어 쓰는 추세다. 노인에게는 사회에 대한 소속감을 주고, 비노인에게는 노인을 자신과 같은 사회의 일원으로 인지하게 한다. 잠재적 사용자인 비노인에게 노인을 위한 공간을 간접적으로 경험시키며 공감을 확장시킨다.

'노인전용' 시설인 경로당은 누구의 것인가. 1년 365일, 노인 아닌 사람의 발걸음이라곤 명절이나 선거철이 아니면 보기 드문 곳. 도시 사용자로서 우리는 이 공간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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