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자체 취재노트

작성자 admin 시간 2024-03-15 15:4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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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한 죽음을 지키는 ‘엔딩서포트’ 


  고령화 사회의 진입은 전 세계적으로 많은 국가들이 직면한 공통적인 도전과제다. 고령 인구의 증가는 고독사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키며, 이는 고령자가 마주하는 가장 쓸쓸한 현실 중 하나로 부각되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고령자의 존엄한 죽음을 지원하는 혁신적인 사회 복지 프로그램 '엔딩서포트'를 도입한 지자체가 있다.
  이번 취재노트에서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우산동의 엔딩서포트 사업을 소개하고, 일본의 사례와 비교하여 이 사업이 갖는 의의와 시사점을 논의한다.

   2022년 발표된 OECD의 사회관계망 지표는 우리나라 국민이 도움이 필요할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숫자로 확인시켜주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연대감의 결핍은 고독사의 증가로 이어졌으며, 2021년 실태조사 결과, 우리나라의 고독사 건수는 총 3,378건으로 최근 5년간 연평균 8.8%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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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광주광역시 광산구 우산동에서는 고령층의 고독사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했다. 우산동은 광산구에서 두 번째로 노인인구가 많은 동으로,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비율이 광주광역시 평균 11.3%보다 높은 15.7%를 차지하고 있다. (28,951명 중 4,542명, 2024년 2월 기준) 또한 우산동은 1인가구 비율이 높은 지역으로 총 세대의 49% 가량이 1인가구이며(전국 평균 42%), 전체 1인가구 중 65세 이상 고령층 비율은 30%에 달한다. 이전 우산동에서는 고독사 또한 매년 5~7건이 발생하고 있었다.

  우산동은 이러한 지역 특성을 반영하여, 가족관계가 단절되었거나 가족의 돌봄을 기대하기 어려운 고령 1인가구를 대상으로 고독사를 예방하기 위한 돌봄서비스를 실시하고, 사망 후에는 장례 처리 문제 또한 해결하도록 지원하는 ‘엔딩서포트’ 사업을 2023년 5월 전국 최초로 시작했다.

  지역 내 고령 1인가구 650명 중 고독사 위험이 높은 고령 1인가구 노인 150명을 선별하여 지역 주민으로 구성된 36명의 엔딩서포터즈가 2인 1조로 사흘에 한 번씩 안부를 살피고, 필요한 경우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대상으로 방문 진료 연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돕는다. 사후에는 예산으로 장례비를 지원하고 사망신고 등 행정절차를 처리하는 한편, 이웃들이 고인의 유류품 정리 및 장례 처리를 돕는 등 사후 복지 서비스가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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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살핌] 어르신께 반찬을 전달하며 안부를 살피는 엔딩서포터즈 (사진 : 광산구 우산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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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복지] 유류품을 정리하고 방역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 : 광산구 우산동 제공)


  ‘2023년 광주마을형 복지공동체 구축사업’ 공모에 선정되어 1천만원의 예산으로 시작된 우산동의 엔딩서포트 사업은 민관 협력 체계를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남종합사회복지관, 송광종합사회복지관, 광산구장애복지관, 우리동네의원, 마을건강센터, 하남성심병원, 만평장례식장 등 마을의 복지, 의료기관 등 광산구 내 다양한 복지 및 의료기관이 사업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우산동 행정복지센터는 이러한 협력체계의 중심으로, 엔딩서포터즈의 안부살핌 등을 통해 대상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여 해당 자원 및 서비스를 맞춤형으로 연계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2023년 엔딩서포트 사업이 시작된 이후, 우산동에서는 단 한 건의 고독사도 발생하지 않았다. 구체적인 사례로, 췌장암으로 투병하던 중 세상을 떴으나 가족들이 주검 인수를 거부하여 공영장례가 이루어진 64세의 김씨,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지적 장애를 안고 폐암으로 사망한 81세의 손씨, 그리고 경제적 여건상 장례를 치를 수 없었던 91세의 박씨의 사례가 있다. 이들은 엔딩서포트를 통해 돌봄서비스를 받으며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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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떠난 주민의 공영장례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 광산구 우산동 제공)

  또한 응급 상황이 발생하기 쉬운 고령 1인가구의 특성 상 정기적인 안부살핌 자체가 고독사 예방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가령 안부를 묻기 위해 방문하였다가 쓰러진 대상자를 발견하는 경우다. 고령 1인가구의 경우 자녀가 없거나 자녀가 있어도 먼 타지에 살고 있거나 연락이 끊겨 있는 등의 이유로 보호자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러한 대상자와 함께 119 구급차에 동승하거나 병원까지 동행하는 일도 많다.

  우산동의 엔딩서포트 사업은 분절되어 있는 안부살핌, 장례비 지원 서비스, 집안의 유류품 정리, 사망신고 등을 통합적인 서비스로 지원한다. 이러한 포괄적 접근 방식은 고독사의 위험에 처한 고령자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보다 효과적으로 제공함으로써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해당 사업은 지역주민의 참여, 다양한 민간기관의 자원 연결을 구현하여 참여형 돌봄 관계망을 구축하는 데에 성공함으로써, 공공복지만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돌봄 사각지대를 지역사회 내 관계와 돌봄으로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공동체의 연대감, 서로를 향한 관심과 배려가 고령화 사회에서 고독사를 예방하고 모든 이의 삶이 존엄하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보여주는 강력한 사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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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광역시 광산구 우산동의 엔딩서포트 사업은 일본 지자체에서 확대되고 있는 엔딩서포트 사업을 모델로 한다. 2021년 실시한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본의 독거노인은 전체 노인인구의 약 5분의 1인 672만 명에 달하며, 이들 대부분은 쇠약하고 노후 준비가 부족한 ‘생활 위험군’으로 분류된다. 일본은 일찍이 1인가구의 증가와 고령화의 심화에 따른 여러 사회문제를 경험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고민해 왔으며 엔딩서포트 사업 또한 그러한 고민의 결과물 중 하나이다. 엔딩서포트 사업은 종활 지원, 장례와 장묘 관련 생전계약 연계, 안부살핌 서비스 등이 합쳐진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종활(終活)’이란 스스로 인생의 종말을 대비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기대수명의 증가와 고령화 심화에 따라 노인들은 자신의 죽음과 그와 관련되어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비하게 되었고, 이러한 움직임은 2010년 경 ‘종활’이란 신조어로 규정됨으로써 일본에서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게 되었다.
  종활은 유품과 상속재산의 정리, 유언장 작성, 간병이나 돌봄방식에 대한 의사표시, 장례와 장묘의 준비 등을 포함한다. 이 중 엔딩서포트 사업은 장례와 장묘를 생전에 준비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다. 이는 고독사 증가에 따라 지자체에서 떠안게 되는 무연고 시신의 처리 부담을 줄이고자 하는 취지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지자체는 지역 내 장례업체와 저렴한 계약으로 장례와 장묘(또는 납골) 관련 생전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대상자와 업체를 연결해주며 사망 후에도 계약이 차질없이 이행될 수 있도록 관리한다.

  2015년 카나가와현 요코스카시에서는 79세 남성이 “저는 사망 시 15만엔 밖에 없습니다. 화장과 무연고분묘로 처리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를 인수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란 유서를 남기고 사망했다. 그러나 이 남성의 시신은 생전의 희망대로 처리되지 못하였고, 법정 상속자인 여동생이 있어 유산을 장례비로 활용할 수도 없었다. 요코스카시는 2015년부터 무연고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지역 내 장례업체와 생전계약 연결, 임종 관련 상담과 희망사항의 청취, 안부확인 및 고독사방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엔딩플랜 서포트 사업’을 시작하였고 이것은 많은 지자체에서 종활지원에 있어 선례로 삼는 모델이 되었다. 
  지자체마다 엔딩서포트 사업의 대상자 요건은 다르나 요코스카시의 경우 (1) 월 소득 18만엔 이하, (2) 예금 및 저축액 250만엔 이하, (3) 고정자산 평가 500만엔 이하, (4) 혼자 사는 65세 이상 시민 등이며, 질병이나 장애 등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위 요건을 충족하지 않더라도 대상이 될 수 있다.
  요코스카시는 엔딩서포트 사업에 이어 2018년에는 ‘나의 종활등록’ 사업을 실시하여 모든 시민이 장례 및 유품정리를 위한 생전계약 사항, 유언장의 소재, 무덤의 위치 등 자신의 임종과 관련한 정보를 시에 등록하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였다.

  나고야시 또한 저소득층 독거노인을 중심으로 요코스카시와 유사한 ‘안심 엔딩서포트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사망 시 남은 살림을 정리하고 채무 해결, 병원비 지급, 사망 신고 등을 예탁금으로 처리해주며, 매달 전화로 안부를 살피고 6개월에 한 번씩 가정 방문을 한다. 해당 사업은 나고야시 사회복지협의회에서 위탁받아 수행하고 있는데, 협의회에서는 종활 지원과 안부살핌에 더해 병원 동행이나 입퇴원 시의 도움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나고야카(온화함) 엔딩서포트 사업’ 또한 독자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해당 사업의 대상은 직계비속이 없고 50만엔 가량의 예탁금을 일시납부할 수 있는 65세 이상 노인 중 심사를 거쳐 대상자로 선정된 사람이다. 지자체의 엔딩서포트와 다른 점은 대상자를 시민세 비과세인 저소득층으로 한정하지 않는 대신 가입비(16,500엔)와 연간이용료(연 11,000엔)를 납부하여야 한다는 점, 또한 별도의 비용 납부를 통해 입퇴원 지원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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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시 ‘안심 엔딩서포트 사업’ 및 나고야시 사협 ‘나고야카 엔딩서포트 사업’ 팸플릿 표지
(출처 : 나고야시 사회복지협의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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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산동과 일본 요코스카시 등의 엔딩서포트 사업은 고령화 사회가 직면한 고독사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적극적이며 포괄적인 접근 방법을 제시한다. 이러한 사업은 고령자의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지원함으로써 고령화 사회의 복지 향상에 기여하며, 지역사회의 자원봉사자, 공공기관, 사회복지기관 등 다양한 주체들의 협력을 바탕으로 고령자와의 연대를 강화하고, 고령화 사회에서의 사회적 고립 문제를 예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더 나아가, 고령자의 죽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고, 죽음을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문화를 조성하는 데 기여한다.

  또한 일본의 엔딩서포트 사업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유언장 공증과 생전계약을 통해 대상자의 의사가 사후까지 최대한 존중될 수 있도록 지자체 등에서 지원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웰다잉 논의가 유언장 작성, 연명치료에 대한 사전 의사표시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1인 고령가구의 경우 이러한 생전 의사가 사후까지 이어지지 못할 위험성이 있다. 엔딩서포트 사업은 각 개인이 주체적으로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사망 후에는 지자체가 무연고자의 대리인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마지막까지 개인의 존엄한 죽음을 보장한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우산동과 일본의 사례는 다른 국가와 지역사회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고령화 사회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혁신적인 접근법과 사회적 연대의 중요성을 보여주며, 지자체의 지원을 통해 고독사에 따른 여러 사회 문제를 방지하는 하나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례는 더욱 많은 지역에서 고령자의 복지 향상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는 데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